5분 핵심 대본
안녕하세요. 지금부터 성막의 바깥 뜰을 둘러싼 세마포장과 기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세마포장을 천천히 가리키며]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 희고 긴 천입니다. 성경은 성막 뜰의 남쪽과 북쪽을 각각 백 규빗, 동쪽과 서쪽을 각각 오십 규빗으로 만들고, 높이 오 규빗의 세마포장을 치라고 기록합니다. 한 규빗을 약 사십오 센티미터로 보면, 이 포장의 높이는 약 이 미터 이십오 센티미터가 됩니다.
이 포장을 세우기 위해 남쪽에 스무 개, 북쪽에 스무 개, 서쪽에 열 개, 그리고 문이 있는 동쪽에 열 개, 모두 예순 개의 기둥이 세워졌습니다. 약 오 규빗마다 하나씩 서서 삼백 규빗 길이의 울타리를 받치고 있는 셈입니다.
[흰 천 가까이 다가가며] 그런데 왜 하필 흰 세마포였을까요? 성경에서 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는 죄 없고 점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거룩함을 뜻합니다. 광야를 지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옷은 모두 먼지로 더러웠지만, 서로의 옷만 볼 때는 그 더러움을 잘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하얀 세마포장 앞에 서면 자기 옷의 얼룩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는 괜찮아 보일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거룩함 앞에서는 자신의 참모습을 보게 된다는 뜻입니다.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서 섬길 때 입는 법복도 같은 세마포로 만들었습니다. 성경에서 포장과 법복이 같은 재료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필요한 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동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완전한 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덧입는다는 것입니다.
[기둥을 가리키며] 이제 기둥을 보겠습니다. 성경은 받침은 놋,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이라고 분명히 말하지만, 놀랍게도 기둥 자체가 무슨 재료인지는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서 이 침묵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의 과거 학력이나 경력, 형편이 자격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뜻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원래 무엇이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 손에 붙들려 어떻게 만들어지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둥이 아무 곳에나 서는 것은 아닙니다. [기둥 아래 받침을 가리키며] 모든 기둥은 놋받침 위에 섭니다. 성경에서 놋은 심판을 뜻합니다. 곧 기둥이 견고하게 서려면 나의 감정이나 선한 행동이 아니라, 내 죄의 심판을 대신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믿음으로 서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기둥과 기둥은 은 갈고리와 은 가름대로 연결됩니다. 바람이 불 때 하나의 기둥만으로는 흔들릴 수 있지만, 서로 연결되면 함께 버틸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은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뜻합니다. 우리가 완전해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붙드는 주님의 은혜가 온전하기 때문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7~8분 표준 대본
안녕하세요. 성막 전시회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지금부터 성막 바깥 뜰을 둘러싼 세마포장과 기둥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흰 천과 기둥이 반복되는 단순한 울타리처럼 보이지만, 성경에서 이 구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십자가, 그리고 사람을 붙드는 은혜를 보여 줍니다.
[성막 전체 둘레를 손으로 그리며] 먼저 크기를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27장에는 성막 뜰의 남쪽과 북쪽이 각각 백 규빗, 동쪽과 서쪽이 각각 오십 규빗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포장의 높이는 오 규빗입니다. 한 규빗을 약 사십오 센티미터로 환산해 보면, 뜰은 약 사십오 미터 곱하기 이십이 점 오 미터이고, 포장은 약 이 미터 이십오 센티미터 높이입니다.
남쪽에는 기둥 스무 개, 북쪽에도 스무 개, 서쪽에는 열 개가 섭니다. 동쪽에는 가운데 이십 규빗 너비의 문이 있고, 문 양쪽의 포장까지 합해 기둥 열 개가 섭니다. 그래서 울타리의 둘레는 모두 삼백 규빗, 기둥은 예순 개입니다. 대략 오 규빗마다 기둥 하나가 흰 포장을 받치고 있습니다.
[흰 세마포장을 가리키며] 이 세마포는 희고 깨끗한 고운 삼베입니다. 성경에서 성막의 여러 부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듯, 흰 세마포장도 예수님의 희고 깨끗하고 점 없고 의로운 성품을 뜻합니다. 베드로전서는 예수님이 죄를 범하지 않으셨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셨다고 말합니다. 세마포의 흰색은 바로 그 거룩함을 눈앞에 보여 주는 표지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광야를 지난 이스라엘 백성의 옷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십 년 동안 옷이 해어지지는 않았지만, 모래와 먼지가 묻어 깨끗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비슷하게 더러운 옷을 입고 있으면 자기 옷이 얼마나 더러운지 잘 느끼지 못합니다. [잠시 관람객을 바라보며] 그러나 이 새하얀 세마포장 가까이에 오면 얼룩과 먼지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나는 그래도 저 사람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성경에서 우리의 비교 기준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거룩함입니다. 흰 포장 앞에서 옷의 더러움이 보이듯, 그리스도의 의 앞에서 내 마음의 모습을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정죄하기 위한 끝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의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시작입니다.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갈 때 입는 법복도 같은 세마포로 만들었습니다. 성경에서 뜰의 포장과 제사장의 법복이 같은 재료인 것은 중요한 의미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면 내가 노력해서 만든 의가 아니라, 세마포장이 나타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동일한 의를 입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로마서 3장은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친다고 말씀합니다.
[기둥으로 이동하며] 이제 이 세마포장을 붙들고 있는 기둥을 보겠습니다. 성경은 받침을 놋으로,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를 은으로 만들라고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기둥 자체는 나무인지 금속인지 재료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이 침묵은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세상에서 직원을 뽑을 때는 학력과 경력, 자격을 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기둥으로 쓰임받는 데에는 과거의 조건이 기준이 아닙니다. 많이 배웠기 때문에 쓰임받는 것도 아니고,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쓰임받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비워지고 하나님 손에 붙들려 그분의 방법으로 다듬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4장에서 빈 그릇에 기름이 채워진 것처럼, 과거에 무엇을 담았던 그릇이었는가보다 지금 비워져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면 이 기둥은 무엇 위에 서 있을까요? [놋받침을 가리키며] 예순 개의 기둥 아래에는 예순 개의 놋받침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놋은 하나님의 심판을 뜻합니다. 민수기 21장에서 불뱀에 물린 사람이 장대 위의 놋뱀을 바라볼 때 살아난 사건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연결합니다.
기둥이 모래 위에 그냥 서 있으면 바람에 흔들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을 기분이나 결심, 잘한 행동 위에 세우면 형편이 달라질 때 함께 흔들립니다. 성경에서 우리 죄의 심판을 대신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설 때 견고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미 심판이 끝난 자리, 바로 그 놋받침 위에 기둥이 서는 것입니다.
[기둥 사이를 따라 손을 움직이며] 받침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기둥과 기둥은 은으로 만든 갈고리와 가름대로 연결됩니다. 바람이 불면 한 기둥은 약할 수 있지만, 서로 연결된 기둥들은 포장을 함께 붙들며 견고하게 섭니다. 성경에서 은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뜻합니다. 우리가 실수하지 않아서 서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우리를 붙드시는 주님의 은혜가 온전하기 때문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은 우리에게 연약함을 아시는 대제사장이 계시므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고 말씀합니다. 은 갈고리와 가름대가 기둥들을 서로 붙들 듯, 이는 구속의 은혜가 부족한 사람을 붙들어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한다는 뜻입니다.
흰 세마포장은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재료가 기록되지 않은 기둥은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쓰임받는 사람을 보여 줍니다. 놋받침은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을 담당하신 십자가입니다. 은 갈고리와 가름대는 연약한 우리를 끝까지 붙드는 구속의 은혜입니다.
결국 성막의 기둥이 말하는 것은 “내가 강해서 서는가?”가 아니라 “나는 어디에 서 있고, 무엇이 나를 붙들고 있는가?”입니다. 내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 내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 내 힘이 아니라 십자가와 은혜가 우리를 세웁니다. 이 성막을 둘러보시면서 그 의미를 마음에 한 번 비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0분 확장 대본
안녕하세요. 성막 전시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것은 성막 바깥 뜰의 울타리입니다. [성막 전체를 천천히 둘러보게 하며] 흰 천과 일정한 간격의 기둥이 반복되어 단순해 보이지만, 오늘은 이 세마포장과 기둥 안에 담긴 구조와 의미를 함께 발견해 보겠습니다. 이제 성경에 기록된 구조를 살펴보고, 그 안에 담긴 복음의 의미를 차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성경에 기록된 구조부터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27장 9절에서 19절은 성막 뜰의 포장과 기둥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남쪽과 북쪽의 길이는 각각 백 규빗이고, 동쪽과 서쪽은 각각 오십 규빗입니다. 포장의 높이는 오 규빗입니다. 한 규빗을 약 사십오 센티미터로 환산하면, 뜰은 길이 약 사십오 미터, 폭 약 이십이 점 오 미터이고, 흰 담의 높이는 약 이 미터 이십오 센티미터입니다. 사람이 쉽게 넘어다닐 수 있는 낮은 선이 아니라, 안과 밖을 분명히 나누는 담입니다.
기둥의 수도 구체적입니다. [남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가리키며] 남쪽에 스무 개, 북쪽에 스무 개, 서쪽에 열 개가 섭니다. 동쪽 중앙에는 이십 규빗 너비의 문이 있고, 문 오른쪽 십오 규빗에 세 개, 왼쪽 십오 규빗에 세 개, 문 자체에 네 개의 기둥이 있어 동쪽도 모두 열 개입니다. 전체 둘레 삼백 규빗에 기둥 예순 개, 약 오 규빗마다 하나씩 세워진 구조입니다.
이 울타리는 벽돌이나 철판이 아니라 희고 깨끗한 고운 삼베, 곧 세마포로 만들어졌습니다. [흰 세마포장을 손으로 가리키며] 성경에서 성막의 모든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며, 이 흰 세마포는 예수님의 희고 깨끗하고 점 없고 의로운 성품을 뜻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22절은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라고 말합니다. 이 무죄함과 거룩함이 흰 세마포에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드려 보겠습니다. [잠시 멈춤] 더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두 함께 있다면, 자기 옷이 얼마나 더러운지 쉽게 알 수 있을까요?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잘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광야 사십 년 동안 해어지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의 옷이 나옵니다. 그 옷에는 광야의 먼지가 묻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서로의 옷만 보고 있을 때는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지만, 성막 가까이 와서 새하얀 세마포장을 보았을 때 자기 옷의 더러움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사람과 사람을 비교합니다. “나는 그래도 저 사람보다 정직하다. 저 사람보다는 선하다.” 성경에서 우리의 기준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입니다. 흰 천이 더러운 옷을 선명하게 보여 주듯,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 마음의 실상을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돌로 치려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 앞에서 자기 마음을 살폈고,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 발견은 우리를 절망시키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제사장이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 입는 법복도 세마포로 만들었습니다. 뜰을 둘러싼 세마포와 제사장이 입은 세마포가 같은 재료입니다. 성경에서 이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가 입어야 할 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동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예수님과 동일한 의를 가질 수 있을까요? 더 열심히 살고 더 많은 선행을 쌓으면 될까요? 로마서 10장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는 일을 말하고, 로마서 3장 21절과 22절은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친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자기 노력으로 완전한 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덧입는다는 뜻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세마포장은 죄를 드러내는 기준인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입혀 주시는 의를 보여 주는 복음의 그림이 됩니다.
[기둥 앞으로 이동하며] 이제 흰 포장을 받치고 있는 기둥을 보겠습니다. 출애굽기는 기둥의 받침은 놋으로,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만들라고 분명히 기록합니다. 그런데 성막의 다른 재료들은 구체적으로 명시하면서도 기둥 자체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이 기록되지 않은 재료는 사람의 외적 조건보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을 보여 줍니다.
열왕기하 4장에는 남편이 남긴 빚 때문에 두 아들을 잃을 위기에 놓인 여인이 나옵니다. 선지자 엘리사는 그에게 빈 그릇을 빌려 오라고 합니다. 그 그릇이 전에 물을 담았는지, 기름을 담았는지, 다른 것을 담았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비어 있는 그릇에 기름이 채워집니다. 성경에서 이 빈 그릇과 재료가 기록되지 않은 기둥은 하나님 앞에서 비워진 마음의 중요성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쓰실 때, 그 사람이 과거에 무엇을 가졌고 어떤 배경에서 왔는가보다 자기 것을 비우고 하나님의 것으로 채움을 받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사람을 뽑을 때 학력과 경력, 능력과 자격을 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기둥은 많이 배웠기 때문에 되는 것도 아니고, 배우지 못해서 될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모세도, 바울도 하나님이 쓰시기 전에 자신의 능력만 의지하지 않도록 긴 시간 다듬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방치하지 않고, 그분의 방법으로 훈련하고 만들어 사용하신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렇다면 자격을 보지 않는다는 말은 아무 기초 없이도 된다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둥 아래의 받침을 가리키며] 모든 기둥은 반드시 놋받침 위에 서야 합니다. 성경에서 놋은 심판을 뜻합니다. 민수기 2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불뱀에 물렸을 때, 모세가 장대 위에 놋뱀을 달았고 그것을 바라본 사람이 살았습니다. 요한복음은 이 장면을 인자가 들리는 일과 연결합니다.
성경에서 기둥이 놋받침 위에 서는 것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자기 기분이나 결심, 선한 행동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나를 대신해 심판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믿음으로 서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 행동이 좋을 때만 담대하고 실수했을 때 무너진다면 그 기초는 계속 흔들립니다. 그러나 죄의 심판이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어졌다는 말씀 위에 서면, 기초가 나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견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산불을 만난 사람이 자기 주변의 풀을 먼저 태운 뒤 이미 불이 지나간 자리에 서서 살아남는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산 아래에서 올라온 불은 이미 탄 곳에 이르자 더 태울 것이 없어 꺼집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놋받침은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지나간 십자가의 자리 위에 서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심판을 피해서 안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대신 심판을 받으신 자리 위에 서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기둥 사이의 연결 부분을 가리키며] 기둥은 받침 위에만 놓인 채 따로 서 있지 않습니다. 은으로 만든 갈고리와 가름대가 기둥과 기둥을 연결합니다. 바람이 불 때 한 기둥은 흔들릴 수 있지만, 서로 연결되면 옆의 기둥이 붙들어 주어 함께 포장을 지탱합니다.
성경에서 은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뜻합니다. 기둥이 완벽해서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은 갈고리와 가름대가 붙들기 때문에 서듯, 구원받은 사람도 한 번도 실수하지 않기 때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가 온전하게 붙들기 때문에 선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12절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4장도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대제사장이 계시므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고 말씀합니다. 실수했을 때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혜가 필요함을 알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은 갈고리와 가름대는 “너는 혼자 강해져야 한다”가 아니라 “너를 붙드는 구속의 은혜 안에 연결되어 있으라”는 메시지를 보여 줍니다.
[세마포장을 가리키며] 흰 세마포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거룩함을 보여 줍니다.
[기둥을 가리키며] 재료가 기록되지 않은 기둥은 과거의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 손에 붙들려 새롭게 쓰임받는 사람을 보여 줍니다.
[받침을 가리키며] 놋받침은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을 대신 받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여 줍니다.
[연결 부분을 가리키며] 은 갈고리와 가름대는 연약한 우리를 붙들고 함께 서게 하는 구속의 은혜를 보여 줍니다.
그래서 이 울타리는 “내가 얼마나 깨끗하고 강한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누구의 의를 입고 있는가?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무엇이 나를 붙들고 있는가? 내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 내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 내 힘이 아니라 십자가와 은혜가 우리를 세웁니다. 오늘 성막을 둘러보시는 동안 이 네 가지를 마음에 담아 보시기 바랍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